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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교회가 가능한가?
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08/07/20 (일)  

우리 인간은 원래부터 경험적 존재이다. 무엇이든지 건전한 비판적 판단없이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그것은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20년 전의 일이다. 1980년대 초 필자가 맨처음 외국을 여행하면서 물을 파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흔하고 흔한 것이 물인데 상인들은 그 물을 병에 담아 팔고 다수의 사람들은 그 물을 사 마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가운데 물을 사마시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언제부터인가 대형교회에 대해서 거의 별 생각없이 직간접적인 경험을 해왔다. 자기가 직접 대형교회에 속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보아왔으며 한편으로는 그것이 마치 큰 자랑거리인 양 보이기도 했었고 부러움의 대상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경험적 사고에 의한 것일 뿐 과연 그것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회형태냐 하는 것은 말씀을 좇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은 한 교회의 교인수가 수천, 수만, 수십만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런 교회들은 예배도 1,2,3부 식으로 나누어서 드린다. 한 개체교회가 수천, 수만명이 된다는 것도 옳지 않고 1,2,3부로 나누어 예배를 드린다는 것도 옳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초대교회에서 베드로 같은 사람이 설교를 하니 한꺼번에 수천명이 복음을 영접하지 않았느냐고 억지소리를 하기도 한다. 성경의 그 말은 베드로가 수천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설교했다는 말이 아니라 베드로의 복음증거에 대한 역사가 그렇게 이루어졌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수천명을 모아놓고 육성으로 말씀을 증거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대형교회란 100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전기가 발명되고 마이크, 스피커가 발명된 것이 채 백년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 한국에 소개된 것은 더욱 근래의 일이며 교회에서 그것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십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뿐 아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아파트라든지 자동차 문화도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 아니다. 과거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의 생활은 도시문화가 아닌 시골형 문화였다. 도시 역시 아파트와 자동차가 가득해 한곳에 쉽게 모여드는 문화가 아니라 각 지역을 중심으로 모이는 소박한 문화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이후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도시화되기 시작했으며 전기 등의 보편적 보급과 더불어 아파트, 자동차 등을 통해 생활자체가 도시문화형태로 변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함께 도시화, 대형화 한 것이 교회이다. 사람들은 소위 유명하다는 목사들을 따라 모이기 시작했으며 무비판적 대형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교회는 마치 가정과도 같은 유기적 공동체이다.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 간에는 서로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한 성경에는 교회를 설명하며 인체와 비유해 설명하는 부분들이 많이 나오는데 인체에는 여려 기관들이 있어서 서로 깊은 연관성이 있다. 발이 아프든지 손이 아프든지, 아니면 내장기능이 약하든지 하면 전체 몸이 실질직으로 함께 느끼며 고통할 수 밖에 없다. 유기적 공동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교회내에는 다양한 직분들이 있고 여러 성도들이 있어서 서로간 인간의 몸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발이나 손이나 내장기관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서로 모른다 할 수 없고 모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교회에 속한 성도들 간에 서로 알지 못한다면 벌써 교회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목사가 성도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하고 누가 우리교회 성도인지 모른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집사와 집사가 서로 모른다면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아주 큰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누가 목사인지, 장로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성도들이 서로간의 신앙을 잘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참다운 성례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목사, 장로, 집사 등 교회의 직원을 세울 때 무기명 비밀 투표하여 세울 수도 없다. 교회에서는 투표를 할 때 사전 운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기명 비밀투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야 하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름을 어떻게 올바르게 적어낼 수 있겠는가?

필자는 20세기 이후 생겨난 대형교회를 현대과학과 함께 태동된 건강하지 못한 기형(畸形)이라 생각한다.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서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함께 성찬을 나누고 권징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형교회들도 구역을 많이 나누어서 같은 구역에 속한 성도들끼리는 좋은 교제를 나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채 교회를 교제(fellowship)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잘못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규모는 어느정도이면 좋을까? 여기서 우리는 몇 명정도 규모의 교회가 좋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역사 속에 있었던 전통적 교회를 기억하며 이렇게 말한다. 설교자가 교회의 전체성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육성(肉聲)설교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가 이상적인 규모이다. 그 정도 규모라면 유기적 공동체인 교회 가운데서 세례, 성찬, 권징사역을 이루어가는데 적절할 것이다. 이에 지나쳐 교인들을 많이 끌어 모으려는 것은 욕심일 따름이다.

그러나 규모가 대형화하지 않고 적절한 것만으로 올바른 교회가 아님을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올바른 선포, 올바른 성례의 시행, 올바른 권징사역이 필수적이다.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설교자가 육성으로 설교해서 성도들이 알아들을 만한 규모의 공동체로서, 위에 말한 말씀의 선포, 성례, 권징사역이 주님의 뜻 가운데서 잘 이루어져 가는 교회라 할 수 있다.

                                                                                                                        - 이광호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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